본문 바로가기
프랑스, 오고 싶니?

과연 프랑스는 좋은 나라일까? 1

by 파리예술가 2021. 11. 29.

아무래도 제목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다.

이 세상엔 누구에게나 좋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싫다고 말할 때 마다 "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어!"라고 나를 혼내시는 할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렇다. 돈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 내가 돈이 없다는게 문제였지.

 

 매번 1등을 놓치고, 합격을 놓치고.. 그러다보면 돈 벌 기회를 놓치고.. 나는 그저 브랜드 카페 한 구석탱이에서 주문이나 받고, 커피나 내리는 자아실현이라고는 1도 할 수 없는 조건에서 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이게 꿈이고, 자아실현의 통로가 되는 일이겠지. 그치만 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갑자기 글이 고리타분한 철학서적스러워지는 기분이라면 조금 질문을 바꿔보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이고, 그것을 소중히 여겨주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예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자면 길다. 그렇지만 한번 적어보겠다. 왜냐하면 여기는 당신들이 킬링타임으로 들어와서 글을 읽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삶의 기록이고, 인류가 멸망하고, 누군가 우리가 쓰던 인터넷 세상을 발굴해낸다면 나의 글이 휴먼1의 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는 바야흐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즉, 2013년에서 시작된다. 나는 용화여고를 나왔다. '그것이 알고싶다'나 '궁금한 이야기 Y' 혹은 '미투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았다면 한번 쯤 들어보았을 아주 유명한 여자고등학교이다. 노원구에 위치해있고, 아파트 숲속에 덩그러니 지어진 초라하고 작은 고등학교이다.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도 많았지만, 나는 그럭저럭 나의 10대 후반을 아주 잘 보낸 스위트한 공간이다. 그곳의 특징을 나열하자면 고딕체 12포인트로 10장도 넘게 쓸 수 있지만, 간략하게 맥락상 중요한 한 가지만 말하자면, 선도부의 권력이 대단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권력의 맛을 좀 보려고 선도부에 가입했다. 

 

 고3은 공부하라고 제끼고, 고1이 신입생, 고2가 실세인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선도부장은 2학년이 담당했고, 선도부장 선생님은 나를 선도부장을 시키고 싶어했다. 중요한건 나는 정작 선도부 일을 열심히 안했던거다. 그냥 지난 선도부장이었던 언니가 나를 면접(나름 면접도 봐서 들어가는 동아리였다.)때부터 예뻐라 하셨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추천을 하셨다. 선생님도 나에게 꽂혔어서 다른 아이들한테 거의 나를 선도부장으로 만들자고 강요섞인 통보, 통보같은 강요를 하셨고 선도부장을 하기 위해 열심히 봉사했던 다른 아이들은 반발했다.

 

 결국 아이들의 반발로 나는 선생님한테 이럴거면 나 선도부장 안한다고 말을 했고,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과 한패가 되어서 나를 엿먹이기 시작했다고!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선생님은 나중에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용화여고 미투 운동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받은 아주 유명하신 분이시다. 애니웨이 나한테는 헛짓 안했으니까 그 이야기는 한쪽으로 접어두고.. 요점은 그래서 선도부를 1년하고 관두고 나는 다른 동아리를 찾아야했다.

 

 그때 나와 친했던 친구 한 명이 미술동아리 회장이었다. 간단했다. 그 친구가 있으니까 나는 입시미술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가입했다. 친구랑 놀고, 자습시간도 많다고 해서. 그래서 동아리 때 마다 미술공부하는 친구들이랑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그냥 미술을 좋아하게 됐다.

 

 뭐야? 친구따라 강남간 이야기냐? 네. 친구따라 강남갔다가 그때 땅사서 알부자 된 사람 많아요. 제가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죠.

 

 그 미술동아리 회장이랑 수능끝나고 전시회 엄청 보러다녔는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그때 더 갖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입시미술 하는 애들이랑 놀다보면 입시제도 욕만 오지게 하지 딱히 미술하는 아이들 참 멋져.. 라는 생각은 안하게 된다. 할 수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애들이 다 삶에 찌들어있고, 그게 겉으로 보인다. 정말 지금도 길거리에서 미술공부하는 애들 고르라고 하면 고를 수 있다. 왜냐면 걔네들은 조용한 좀비니까.

 

 근데 그냥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내가 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존재해서 내가 죽어도 누군가에게 길이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매력있는가. 그치만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을 통해 나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한국은 절대 내가 사랑하는 예술을 소중히 여겨주는 나라는 아니었으니 나는 떠나야만 했다. 일단 다니던 대학교를 때려쳤다. 등록한지 한달만의 일이었다. 엄마와 아빠한테는 거짓말로 하고 할머니한테만 말씀드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엄마랑 아빠한테 고자질하셨고 그래서 나는 겁나 후두려 맞았다. 한달만에 관두어서 등록금의 일부가 환불됐는데 그걸 또 엄마랑 아빠한테 숨겼다. 나는 다른 나라로 떠날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한테는 부모님의 소중한 외동딸 이제 조국을 떠나 유학길에 오르겠나이다. 라고 발표하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이나라 저나라 찔러보았다. 

 

 사실 미술유학하면 미국과 영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달리도 미술계의 판도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변했다는걸 알고 발빠르게 뉴욕으로 진출했는데, 더 이상 말해 뭐하나? 달리가 살아서 활동하던 때가 1920년대부터인데 이미 그 과거부터 미술하면 뉴욕이었던거다 지금은 런던이랑 뿜빠이해서 핑퐁하는거고. 그럼 뉴욕이나 런던으로 가자!

 

 내가 가진 자금과 우리 집의 형편을 면밀히 따져보았을 때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학비는 개뿔 집 렌트비도 가서 알바 빡세게 해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럼 나 그림은 언제해요? 그냥 한식당에서 코리안바베큐 서빙하다가 손목 나가서 한국 돌아오는거 아닐까? 예술가로 사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 되어 네일아트나 미용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안되는 일이다. 절대 안되는 일!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예술의 나라, 학생의 나라 그 곳은 어딘가?

 

 - 프랑스요 프랑스

 

 프랑스요?

 

 - 네~ 예술하면 프랑스인거 알죠? 한물 간건 아는데 그래도 우리끼린 아직 좋거든요. 그리고 학비도 (아직)저렴하답니다~ 1년에 30만원정도? 집세도 뉴욕이랑 런던만큼 사악하지는 않아요~~ 어서 오세요 봉쥬르 엉셩떼 비앙브뉴~~~

 

 

 그래서 그렇게 나는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댓글